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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서울 모터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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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살아 계시던 몇년 전에 갔었던 서울 모터쇼. 자동차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앞으로 전기차 시대가 올지 궁금해서 오랜만에 찾게 다시 찾게 되었다. 사람들도 많고 길에 이 사람들이 타고 온 차들도 많았다. 사실 올 해는 볼만 한 것은 없었다. 신차도 없고 전기차등 새로운 트렌들를 엿볼 수있는 것들은 중소기업뿐이었다.  렉서스에서 공개한 일인용 비행기(?),나르는 호버보드   장애인을 위한 보조 기구  전기차 시대가 오면 꼭 필요할 긴급 충전차 (과연 실제로 빠른 시간에 충전이 가능할까?)  도요타의 전기차 프리우스  GM의 전기차 볼트 EV  기아차의 스팅어 노랑색이 멋지다.  파워프라자의 예쁘자나R2  캠시스의 전기차들 픽업트럭 푸드트럭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생산하는 업체 이 업체도 전기차 시대가 외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네이버의 자율 주행 연구   아름 다운 벤츠의 자동차  벤츠와 협업하는 LG와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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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내린 날 -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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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내린 날 - 이정하 창밖에 눈이 내린다. 어머니가 입고 가셨던 그 소복처럼 하얀 눈이. 그 해 겨울엔 날씨가 어땠는지, 눈이 왔었는지, 내가 무었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다. 그저 어머니의 멀어져가는 발자국만 가슴에 남아있음을 기억한다.

당신 아직도 따뜻 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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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아직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심장이 뛰나요? 당신 아직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따뜻한가요? 삶의 고단함을 핑계로 스스로 차가와지거나 딱딱하게굳어 버리지 않았나요. 미 소를 잃지 말아요 당신의 미소가 누군가에겐, 적어도 내겐 아직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 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어느 시인의 시처럼 난 연탄재만큼도 어느 누구에게도 뜨거웠던 적은 있는가.. 아님.. 지금도 다타버린 재처럼, 식어버린 죽처럼 삶의 윤기를 잃고 희망을 일고 사랑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

조선상고사 표지를 보면서 잠심(潛心)하여..

오늘 문뜩 지금 읽고 있는 조선상고사 표지에 이런 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희망과 큰 슬픔을 아울러 하여 너를 이 세상에 보내노라. 원하노니,장수(長壽)하라, 큰소리치라. 유수(流水)같을 지어다." 정확한 뜻은 알듯말듯하다. 하지만, 역사가 흘러가 버린 지난날만이 아닌 현재 씌여지는 것이라면, 나는 희망과 슬플속에서 장수하라고 큰소리치고, 유수와 같아야할 우리의 역사를 잘만들고 있는 걸까. 잠시나마 고민해본다.

사랑

네가 사랑을 안다고? 웃기고 있네. 사랑과 집착을 구별도 못하면서. 사랑한다면 왜 못잊어.. 사랑하기때문에 잊어 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너때문에 술만 는다. 한숨만 깊어간다. 해바라기는 해를 쫓을 뿐 사랑할 수 없다. 해바라기는 자신의 그림자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없다. 햇볕만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아침에 듣는 클래식 음악

요 옆에 나의 서재에 보면 얼마전 구입한 카라얀 지휘곡중에서 대표곡 모음 100곡 CD가 있다. 오늘 아침엔 그중 3번CD인 교향곡을 듣고 있다. 역시, 카라얀은 베토벤이 좋아..흐흐.. 아침을 '운명'이나 '합창'으로 시작하는 것도 힘든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한 방법인 것 같다.

삶에 여유가 없는건지, 내 맘에 여유가 없는건지.

일기장을 열어보니 마지막 일기를 쓴게 일주일 전이었다. 내가 비록 일기를 매일 정성껏 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쓸 말이 없어도 '별일 없음' 이란 말이라도 적어놓곤 했는데. 요즘은 일기도 통 안쓰게되고, 블로그에도 글올리기가 힘들다. 삶에 여유가 없어서인지, 내 맘에 여유가 없어서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이겠지.

설날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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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다가오고, 또 어머니 첫 기일이 다가오니, 요즘 많이 우울하다. 내가 살고 있는 꼴도 우습고, 가족도 그렇고.. 내가 하는 프로젝트 돌아가는 것도 우울하다. 작년 설엔 난 어머니 병상을 지켰다. 그 때까지 만해도 어머니께서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어머니는 폐암으로 투병하고 계셨고, 머리까지 암이 전이 되서 그 당시에는 말씀 한 마디도 못하셨다. 하지만, 분명히 의식이 계셨다. 그 당시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어머닌 기저귀를 차셔야했다. 설날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그 분이 죽어가시는 걸 본다는 건 정말 지금 생각해도 많이 아픈 일이었다. 잠시후 간호사가 와서 어머니를 살피더니 대변을 보신것 같다고, 자기가 기저귀를 갈아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멍하니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눈을 크게뜨고 분명하게 나보고 나가있으라고 손짓과 말씀을 하셨다. 어쩌면 내가 들은 어머니의 또렷한 목소리는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아들에게만은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않으신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난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다. 생의 끝자락에서 어떤모습으로 마지막에 기억에 남을 것인가? 적어도 우리 어머니는 이 물음의 답은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자였다. 난 생전에 우리 어머니께 못생겼다고 놀리고 장난 쳤던 아들이었지만, 그날 이후로 내게 우리어머니는 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인이셨다. 그 일이있고 난뒤 난 회사때문에 서울로 올라왔고, 2월28일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한테 달려 내려갔다. 어머니는 가뿐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그 가뿐 호흡 중간에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유언인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족들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연신 가래 끓는 소리로 가뿐 호흡을 하고 계셨기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데 몇몇 말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기에. 나는 오늘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시간이 꽤 흘렀다.

내가 가고자하는 길에서 멀어진 지도,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지도, 해야할 일들을 하지 못한지도, 기억에서 지워야할 것들을 아직도 지우지 못한지도, 오래 됐다. 시간이 꽤 흘렀다. 접어두고 간직하기에는 내 생은 짧다. 미루지말고, 회피하지 말자. 그게 운명이래도, 인연이래도.

힘들다.

살아 있어서.. 혹은 살아가기위해서 그리고 사랑하기위해서. 힘들다.

그냥 ..

오늘은 조금 일찍일어나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가족들 싸이에 들어가 봤다. 조카들과 작은형.. 지금 중3인 조카는 말이 없고 무뚝뚝하다.(누구 처럼??) 하지만, 난 알고 있다 그 나이 또래에 내가 겪었던 막막함.. 외로움.. 공부라는 건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때를 놓치면 많이 힘든게 공부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최고의 가치로 통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경제적 성공만이 인생의 전부인냥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지 않는다. 생활에 작은 행복을 감사할 줄도 알고, 형제간 혹은 친구에게 서로 베풀고 나눌 줄 아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점점 힘들고 어려워지고 있다. 내 삶이 그러하지 않은데 어떻게 나의 조카들과 자식들(아직 없지만)에게 여유와 사랑, 베품을 실천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까.. 성공을 위한 공부는 대단치않다고,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라고 어떻게 말 할 수 있을 까. 한 때는 멋진 철학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아주 조금 한 적도 있었는데. 삶이 점점 철학이 없이 목표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 같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게 중요한 것이란 걸 알면서도 사람이 되는 것보다 다른 가치를 최고로 생각하게 되니..ㅎㅎ

또 한살을 먹으면서.(2997.09.04)

지금은 새벽3시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대수롭게 생각하지않는 그런 하루 중의 하나 일 수도있다. 하지만, 내곁에서 어머니가 떠나신 후 첨 맞는 생일이다. 예전에 생일날엔 집에있으면 아침에 눈뜨자마자 절을 올렸고, 집밖에선 대전쪽을 보고 절을 올렸었는데, 이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계신 방향이 약간달라졌다. 이승과 저승의 차이 만큼 다르다. 눈물이 마르지않는다. 이 나이에 운다는 게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그래도 나의 감정을 숨길 방법이 없다. 어머니께서 날 나으실때 엄청 기뻐하셨다. 어머니 코는 콧구멍도 크시고, 약간 뒤로 누었다. 평생을 웃어 넘기긴 하셧지만, 엄청난 컴플렉스를 가지고 사셨다. 나를 낳으시고, 이모가 '미국놈 코여, 미국놈'이말을 어머니께 하실모양이다. 난 그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어머니한테는 내코가 대리만족이었고, 자랑이 셨다. 오늘이 그 날이다. 만35년전에 어머니는 나를 보고 기뻐하셨고 나는 늙은 어머니(당시 어머니 연세는 36이었다)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다. 아직도 살아 계신것 같은데, 등뒤에서 보고있는 것 같은데, 나를 낳고 많이 기뻐하셨던 내 어머니가. 지금은 지하에서 못난 자식때문에 슬퍼하고 계시지는 않는지. 좋은 구경도 시켜드리고 싶었고, 좋은 음식도 해드리고 싶었는데, 이쁜 색시도 뵈드리고 싶었는데. 오늘 이 아침에 난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다. 내 입에 들어갈 미역국보다 어머니의 슬픈 눈빛이 더욱 더 걱정스럽다.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잘 살아야겠다고. 어디서든 지켜보실 그분의 근심을 두려워하며.

마음을 연다는 건

예전에 어머니와 가까운 시장이라도 갈때면. 어머닌 온 동네 사람들에게 인사를 다하고 다니셨다. 몇 발자국 가지도 않았는데, 아는 사람 만나면 인사하고 한동안 얘기하시고, 또 가다 보면 또 만나서 얘기하고.. 아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 집안 사정도 잘알고 계셨다. 나는 얼른 가고 싶은데, 어머니는 온동네 참견 다 하시면서 다니시니까. 좀 짜증도 났다. 그땐 몰랐지만 이제서야 좀 알것 같다. 어머닌 그렇게 사람을 사귀신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의 아픔을 얘기하고 싶어하고,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오늘 아침을 먹으면서 옛일을 떠올려보니, 어머닌 사람들에게 마음이 열린 분이 셨던것 같다. 마음을 연다는 것이, 나를 보여주는 것만은 아닐것이다. 그사람에게 사소한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을 이해해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인 것 같다. 그렇게 오래 알았으면서, 이름 하나 제대로 묻지도 물어보려고도 못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각박해진 세상에서 진정한 마음의 문을 닫고, 언어적 유희와 자기만족 만을 위한 삶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갑다. 나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기때문에. 어머닌 평생을 두고 사는 법을 가르치셨는데. 난 이제서야 좀 알것 같다. 그리고, 나도 가끔은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물어봐주고, 들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고단한 하루를 마치며.

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머리를 침대에 뉘우다 생각난 사람에게 하루의 감상을 적어본다. 세상에 가장 많은 말은 사랑과 돈일진데. 사랑으로 돈을 탐하고, 돈으로 사랑을 사고 사랑하기에 돈이 필요하며, 돈이 있어야지만 사랑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언젠가 나의 순수한 젊은 꿈은, 인생의 목표는 돈이 되어 버렸다. 나의 순수한 피는 돈을 보면 흥분하고 나의 작은 사랑마저도 돈으로 가치가 매겨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않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초월도 방관도 아닌 정당하면서 의로운 처세는 무엇인가? 고단한 나의 하루의 끝에서 나는 얼마나 사랑했는가? 진정으로, 영혼으로, 보이는 데서나, 보이지않는 데서 나의 호흡과 심장의 박동은 언젠가는 멈추어버릴 것인데. 왜, 나는 나의 생에서, 진실앞에서 용기 없는 것인가? 좀 더 아름다울 순 없는가, 좀 더 용감할 순없는가? 난 고요한 우주에서 불려나온 생명이며, 뜨거운 태양이다. 내가 태어날 때 내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지만, 난 세상에서 축복을 받고 태어났다. 훗날 나의 아기들이 어떤 선량한 몸을 빌어 태어난다면 삶의 끝에서의 슬픔이 아닌, 시작과 놀라움으로 그를 기쁘게 반길것이다. 나의 고통을 헛된 목표를 삼는 것으로 잊으려 하지말고,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첫 눈 맞춤에서의 순수와 순결의 마음으로 돌아가자. --------------------------------------------------------------------------- 2007/6/27일에.. 첨 쓴 글인데 좀 무거운듯하고 처음에 제목에서처럼 잠자리들때 느꼈던 감정,생각들이 제대로 표현되지않아서 초안으로만 남았던 글입니다. 지금 봐도 미숙하지만, 제가 작가로서가 아니라 그저 제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으로서의 글로봐주세요. 가끔 이런 생각도 해요..^^;

어머니께.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않게 어디에서든지 보살펴주세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이름을 욕지거리가 되지않게 훈계해주세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흔들림없이 살아가도록 용기를 주세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생각한대로 행동하여도 부족함이 없도록 지켜봐주세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당신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이 더이상 후회의 눈물이 아닌 각오의 눈물로만 남도록 이끌어주세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다른 누구의 눈에서도 눈물을 흘리지않게 조심하고 경계하도록 가르쳐주세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당신으로 부터 받은 사랑만큼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후회

오늘 내 앞에 앉아 일하시는 선배의 전화에 마음이 흔들렸다. 선배의 딸아이가 아픈가보다. 아이가 병원에 갔다왔냐고 물어본다. 자꾸 이러면 안돼는데, 어머니께서 내 손을 붙잡고 고개 넘어 (나 어릴때는 우리 집이 대전 변두리였다. 지금은 중심에 가깝지만) 병원에 데리고 가시던 생각이 났다. 내 손을 들여다 봤다. 이 손이 과연 나의 손이기만 한가? 이 손엔 어머니의 사랑이 뭍어있다. 아버지의 사랑이 뭍어 있다. 형제들의 사랑이 뭍어 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말이 조금씩 이해가 간다. 내가 먹은 것은 쌀밥과 반찬만이 아니었다. 지금 창밖에 비가 온다. 한데서 외롭게 비맞고 계실 분을 생각하니 목이 메인다. 꿈속에서라도 한번만 더 뵙고 싶은데. 그것조차 내 맘대로 되지않는다. 친구분 말처럼 소주라도 한잔 기울이고 싶은 밤이다.

사람에게는 향기가 난다.

사람의 체취는 숨길 수가 없는 것같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들은 얼굴을 보지 못했어도, 좋은 느낌으로 좋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내겐 진짜 친한 여자 친구가 있다. 애인이라는 뜻은 아니고. 그녀는 대학에 입학할 때 부터 애인이 있었고, 지금은 그사람과 결혼해서 보미라는 예쁜 딸도 있다. 그 친구를 여자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 친구는 만날때나 전화통화할 때마다 엄청나게 말을 많이 한다. 시댁이며, 친정이며, 신랑 얘기까지. 지겹기도하지만, 그렇게 아무렇게나 나를 편하게 생각해주는 녀석이 고맙다. 여기 클럽에서 그런 친구들이 조그씩 늘어 가고있다. 첨엔 어떻게 사람을 사귀는 건지 몰랐다. 이젠 나를 보여주고 , 나의 냄새를 피워서 그들로 하여금 나를 알게하고, 그들의 냄새로 그들을 알고, 그들의 상처와 기쁨을 나의 것으로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은 가까워 진다는 것을 알게됐다. 마치 내 오랜 친구 처럼.. 사실 좋은 사람있으면 애인으로 만들고 싶지만 그것은 중요한게 아닌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고 서로 맘으로 의지하는 것이 먼저인것 같다. 이글도 나의 친구들이 읽어 줄것이다. 내 냄새를 맡으며.. 나도 그렇듯이.

난 화려한게 싫다.

부모님들의 영향인 것 같다. 난 화려한 것이 싫다. 못하는 건 아니다. 화려한 외양속에서 진심을 그 사람의 인격을 보지 못할 까 해서다. 사실 나, 키 작다. 얼굴 크다. 돈도 없다. 하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따뜻한 마음과 성실함 만은 훌륭하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꾸미다 보면, 내가 가진 장점들 마저도 위선과 가식이 된다. 우리 부모님들은 내가 나이 먹어도 혼자라고, 선보자는 얘기를 한번도 안하셨다. 알아서 잘하겠지.. 이제까지 잘 해왔으니까. 믿으니까. 내가 힘들어도 쓰러질 수 없는 이유이고, 어떤 유혹에도 넘어질 수 없는 이유이다. 믿음. 나의 힘이 다.

난 당신을 의심한다.

비가 많이 내리고, 폭풍이 불어 내가 떠내려가려 할 때. 벼랑끝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느낄 때. 누군가가 내게 손을 내밀어 내 서러운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준 사람. 보이지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지만. 느낄 수만 있는 사람. 난 당신을 의심합니다. 당신의 평범한 웃음뒤의 온기를 당신 몸 어딘가에 숨겨 놨을 것 같은 날개의 흔적을. 내가 지칠 때 힘이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듯이 나도 누군가가 지칠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글쓰기의 즐거움

내가 일기를 쓰기시작한 것은 중2때였던것 같다. 쓰다 남은 한문공책뒤쪽에 쓰기시작했다. 나에게 그게 사춘기였다. 상당히 고상한 사춘기였다.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않아서, 생각이 끝나면 움직이는 주의라.. 일기를 쓰게된 계기는 그냥 쓰고 싶어져서이다. 초등학교(우리땐 국민학교라고 불렀지)때 쓰던 일기는 마음을 쓰는게 아니라 생활스케쥴을 기록하는 다이어리 였다. 적어도 내겐. 방학땐 그것을 채우기위해. 이발과 목욕을 같은 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쓸 얘기가 줄어드니까. 철이 들랑말랑할 때 쓰기시작한 일기는 지금도 자신있게 말하지만, 절반이상이 "별 일 없음" 이다. 내 나름의 철학은 내 마음의 감동이 없으면 그날은 그저 그런날이고 별 일 없는 날이다. 그렇게 일기를 쓰면서 글쓰기를 익혔다. 독학을 해서 그런지 요즘느끼는 것은 나의 글에선 친구분들의 글에서 보이는 치밀함이랄까 논리적이고, 때로는 리듬을 타는 그런 글이 나오질않는다. 나름 글쓰기를 위해서 공부도 했다 '교양인이 되기위한 즐거운 글쓰기' 독일 사람이 쓴 책인데, 한 반쯤읽다가 집이 이사하게 되서 어디다 쳐박아 뒀는데, 아직 못찾고있다. 그 책 얘기를 꺼난 것은 그책은 글은 자신의 생각, 사상,철학의 표현이다는 것이다. 나 처럼 글이 꼬이는 사람은 아직 생각이 정리가 안돼고 감정만 풍부한 것이라는 것이다. 즐겁게 글쓰는 것은 내 생각을 표현하여 동의를 얻는 것이고, 내 감정을 글을 읽는 사람에게 이입시켜서 감정의 공유내지는 공명을 이루는 것이다. 요즘 친구분들의 글에서 내 서툰 글이 그들의 글 처럼 좋은 생각을 좋은 감정을 (물론, 때론 슬픈 감정도 있겠지만) 온 몸에 퍼지게 하는지 궁금하다. 첫 연애 편지를 써야 했을 때 난 내마음을 뭐라 표현해야 될지몰라서 편지위에 반짝이 가루를 잔뜩 뿌려서 보낸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편지 뜯었을 때 쏟아질 반짝이 가루. 편지징네 괴발새발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말들. 푸하하.. 다만 순수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