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꽤 흘렀다.

내가 가고자하는 길에서 멀어진 지도,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지도, 해야할 일들을 하지 못한지도, 기억에서 지워야할 것들을 아직도 지우지 못한지도, 오래 됐다. 시간이 꽤 흘렀다. 접어두고 간직하기에는 내 생은 짧다. 미루지말고, 회피하지 말자. 그게 운명이래도, 인연이래도.

그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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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으로.. 기다림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리움으로. 아쉬움으로.. 잠 못 들고 뒤척이게 된다. 그리움으로 후회가 되어 자꾸 뒤돌아보고, 자꾸 울리지 않는 전화기만 본다. 그리움으로 ... 답답한 가슴, 무거운 발걸음을 뒤돌아보며 옮긴다. 그리움으로 그리움으로 '행복 할 거야'. '행복 할 거야.' '행복 할 거야.' 되뇐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 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힘들다.

살아 있어서.. 혹은 살아가기위해서 그리고 사랑하기위해서. 힘들다.

그냥 ..

오늘은 조금 일찍일어나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가족들 싸이에 들어가 봤다. 조카들과 작은형.. 지금 중3인 조카는 말이 없고 무뚝뚝하다.(누구 처럼??) 하지만, 난 알고 있다 그 나이 또래에 내가 겪었던 막막함.. 외로움.. 공부라는 건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때를 놓치면 많이 힘든게 공부다.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최고의 가치로 통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경제적 성공만이 인생의 전부인냥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지 않는다. 생활에 작은 행복을 감사할 줄도 알고, 형제간 혹은 친구에게 서로 베풀고 나눌 줄 아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점점 힘들고 어려워지고 있다. 내 삶이 그러하지 않은데 어떻게 나의 조카들과 자식들(아직 없지만)에게 여유와 사랑, 베품을 실천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까.. 성공을 위한 공부는 대단치않다고,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라고 어떻게 말 할 수 있을 까. 한 때는 멋진 철학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아주 조금 한 적도 있었는데. 삶이 점점 철학이 없이 목표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 같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게 중요한 것이란 걸 알면서도 사람이 되는 것보다 다른 가치를 최고로 생각하게 되니..ㅎㅎ

세상은 내머리를 두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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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머리를 두드리며 어리석고 게으른 나를 깨우고 시간은 내가슴을 탕탕치며 지난 기억을 아픔과 후회로 만든다. 차라리 생각도 기억도 하지 말것을 해보지만, 이런 슬픔과 고통도 나를 살게하는 양식이기에 삶은 고단해도 고맙다. ---------------------- 제작년경에 msn대화명으로 썼던 세상은 "내머리를 두드리고" 를 갖고 이어서 쓴 글이다. 우리 아버지는 말씀하실때 손가락으로 살살 찌르는 습관이 있으시다. "왜냐하면 말이지.." 이렇게 시작하는 말씀으로 가끔 장난스럽게 머리를 두드리신다. 이런 이미지가 어리석은 나를 깨우치는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살면서 어리석었던 생각, 행동, 말을 하면 나 스스로 머리를 쥐어밖지만, 아버지의 정겨운 두두리는 이미지가 좋아서 그러게 시작된 행이다. 어리석음과 한 스러운 삶을 살면서 차라리 모른 채하자,무감각하게 지내자 생각하며 애써 무시하고 살자고 하지만, 삶은 역시 그런 고단함과 슬픔을 양식으로 다짐하며 살아가게 되기에 아프고 힘들고, 내자신이 한 스러워도 지나가면 다 고마운 일들이 된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 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또 한살을 먹으면서.(2997.09.04)

지금은 새벽3시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대수롭게 생각하지않는 그런 하루 중의 하나 일 수도있다. 하지만, 내곁에서 어머니가 떠나신 후 첨 맞는 생일이다. 예전에 생일날엔 집에있으면 아침에 눈뜨자마자 절을 올렸고, 집밖에선 대전쪽을 보고 절을 올렸었는데, 이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계신 방향이 약간달라졌다. 이승과 저승의 차이 만큼 다르다. 눈물이 마르지않는다. 이 나이에 운다는 게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그래도 나의 감정을 숨길 방법이 없다. 어머니께서 날 나으실때 엄청 기뻐하셨다. 어머니 코는 콧구멍도 크시고, 약간 뒤로 누었다. 평생을 웃어 넘기긴 하셧지만, 엄청난 컴플렉스를 가지고 사셨다. 나를 낳으시고, 이모가 '미국놈 코여, 미국놈'이말을 어머니께 하실모양이다. 난 그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어머니한테는 내코가 대리만족이었고, 자랑이 셨다. 오늘이 그 날이다. 만35년전에 어머니는 나를 보고 기뻐하셨고 나는 늙은 어머니(당시 어머니 연세는 36이었다)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다. 아직도 살아 계신것 같은데, 등뒤에서 보고있는 것 같은데, 나를 낳고 많이 기뻐하셨던 내 어머니가. 지금은 지하에서 못난 자식때문에 슬퍼하고 계시지는 않는지. 좋은 구경도 시켜드리고 싶었고, 좋은 음식도 해드리고 싶었는데, 이쁜 색시도 뵈드리고 싶었는데. 오늘 이 아침에 난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다. 내 입에 들어갈 미역국보다 어머니의 슬픈 눈빛이 더욱 더 걱정스럽다.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잘 살아야겠다고. 어디서든 지켜보실 그분의 근심을 두려워하며.

상사몽 (相思夢)

그리운 이가 보고파서, 울다 지친 어느 날엔가 내작은 꿈처럼 꿈속에 다녀가신 , 고운 발걸음엔 온통 예쁜 꽃 향기가 천지를 가득 채우고, 세상은 그렇게도 밝고 예쁘더만, 눈뜬 아침의 또 다른 그리움은 자조 섞인 쓴 웃음과 또 다시 눈물 뿐. 내 꿈을 버리지않으면 행복해질 수없 고, 내 사랑을 사랑으로 간직할 수없다면, 사랑을 사랑으로 지키기도 힘든 하루. 사랑이 그리워져 나간 거리엔 낯선 사람들의 그림자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