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국회의원 선거날 이었다 . 나는 투표를 하고 그전 부터 마음 먹고있었던 삼전도비를 찾아갔다 . 송파구 석촌동 주택가에 있는 이비는 청나라 태종이 병자호란이 끝난뒤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 우리나라로서는 아주 치욕적인 비가 아닐 수가 없다 . 임진왜란 직후 광해군은 실리외교를 펼쳤다 . 약해진 명나라대신 동북아의 강자로 떠오르는 여진의 후예인 후금 ( 이후 청나라 ) 을 상대할 힘이 조선에는 아직없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시하는 친명 세력이 득세를 하게되고 , 후금은 명과의 일전을 앞두고 배후의 두려움을 없애기위해서 정묘호란 , 병자호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 여진족은 볼래 말갈족의 일파이다 . 말갈족이라면 알다시피 대진국 ( 발해 ) 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 즉 우리민족과 형제나 다름없는 종족인것이다 . 고구려 1000 년의 역사속에서 우리의 피지배계층 혹은 연맹의 한 부족이었다 . 혹자는 정묘나 병자의 호란은 그들의 의도보다 조선의 척화파의 득세로 인한 정책의 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 내 생각엔 때론 주종관계로 때론 형제의 관계로 지내기도 했던 나라였지만 , 청나라의 기반이 다져지면서 명나라처럼 주종관계를 요구했을 것이다 . 우리쪽 정책이 척화로의 급선회 될 때, 자신감 만큼 준비되지않은 군사력의 약세를 고려하지 못한 무모한 친명정책이 패인인 것 같다 . 잘 보이는 지 모르겠지만 , 이 삼전도비의 본래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다 . 침략해와서 무수한 인명을 앗아갔을 텐데 , 공덕비라니 '역사는 힘이 있는 자가 정의이고 진리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 국회의원 선거를 했다 . 예전에는 성군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었다 . 하지만 , 현재는 그렇지 않다 . 성군은 국민들이 올바른 여론으로, 깨여 있는 의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